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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의미하지도 사소하지도 않다.
튤립 열풍 - 네덜란드를 뒤흔든 황금의 구근 본문
터번(turban)을 뜻하는 터키어에서 그 이름이 유래되었다는 튤립(tulip)은 1550년 경에 터키를 거쳐 유럽에 처음 소개되었다. 이후 집약적으로 재배하고 품종을 개량하면서 튤립은 더욱 더 아름다워졌다. 하지만 이렇게 섬세해질수록 더 여리고 약해졌기 때문에 튤립은 고도의 기술을 가지고 조심스럽게 다뤄야만 재배할 수 있는 화초가 되었다.
튤립은 부유층, 특히 독일과 네덜란드 부자들 사이에서 큰 인기를 끌었다. 가장 아름다운 구근을 선발하는 대회에는 날이 갈수록 더 많은 상금이 걸렸고 우승을 차지한 구근은 이종교배를 위해 비싼 값에 팔려나갔다. 1630년 경이 되자 특히 네덜란드 사람들이 튤립 재배와 매매에 사로잡혔다. 전문가도 아니면서 튤립을 키우는 사람이 늘어나자 특별히 인기가 있거나 대회에서 우승할 만한 구근들의 값이 뛰기 시작했고, 1634년에는 암스테르담 주식거래소 옆에 튤립을 거래하기 위한 공간이 따로 마련되었다.
튤립을 소유하려는 열기가 어찌나 뜨거웠던지 ‘구근 40개를 구입하기 위해 10만 플로린이라는 거액을 투자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가 돌았다. 뒷마당에 얼마 안되는 땅이라도 있는 사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구근을 재배하기 시작했고, 값이 계속 오르면서 처음에는 다들 돈을 벌었다. 평범하게 살던 사람이 희귀한 구근을 키워서 벼락부자가 되었다는 이야기가 퍼졌고, 멀쩡히 직장을 잘 다니던 사람들이 튤립을 키우고 거래하는 일에 전념하기 위해 사표를 던졌다.
새로운 부(富)가 발생하면서 통화의 공급이 팽창했고, 모든 것들의 값이 덩달아 오르기 시작했다. 게다가 잉글랜드와 유럽 등지의 돈까지 몰려들었다. 이런 모습을 본 네덜란드 사람들은 튤립 열기가 영원히 계속될 것이며 세계 어느 곳을 막론하고 부자들이라면 모두 너무나 아름다운 네덜란드 튤립을 살 것이라고 생각했다.
초기에는 구근을 땅에서 캐내는 6월 말부터 다시 땅에 심는 9월 사이에만 거래가 이루어졌다. 그러던 것이 열기가 달아오르면서 여름에 구근을 보내주겠다는 약속을 덧붙여 1년 내내 사고팔았다. 화훼 전문 삽화가 윌프리드 블런트는 당시의 상황을 이렇게 묘사했다.
“투기꾼들은 그렇게 엄청난 액수를 지불하고도 정작 구근은 손에 넣지도 못했을 뿐더러, 사실 그럴 마음도 없었다. 또 어떤 사람은 소유하기는 커녕 받아보지도 못한 구근을 팔았다. 어떤 귀족이 2000플로린을 주고 굴뚝청소부에게서 산 튤립을 그 자리에서 농부에게 되파는 식의 광경은 흔히 볼 수 있었다. 귀족이나 굴뚝청소부, 농부 중에서 그 뿌리를 소유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으며, 그러길 바라지도 않았다. 튤립철이 끝나기 전에 네덜란드의 정원에 있는 튤립을 다 더해도 모자랄 만큼의 구근이 손을 바꿨지만, 그들이 주고 받은 것은 배달할 날짜에 대한 약속 뿐이었다.”
튤립 열풍이 정점에 이른 것은 1634년에서 1637년 사이였다. 상등품의 값은 지금 가치로 거의 11만 달러까지 치솟았다. 열기가 고조되면서 사회의 조직 자체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농부들은 튤립 투기를 위한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가축을 내다팔고 집과 토지를 저당잡혔다. 다들 누군가 자기 집 정원에 들어와 튤립을 훔쳐 갈까봐 전전긍긍했다.
semper augustus
알렉산더 뒤마의 소설 ‘검은 튤립’에도 열기에 들뜬 사람들이 벌인 탐욕과 타락의 이야기가 실려있다. 어떤 사람들은 경쟁자가 자신의 품종을 알아 차리지 못하게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밤에만 몰래 튤립을 가꾸기도 했다. 이런 모습을 지켜본 이방인들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군중심리를 다룬 고전적인 저서 ‘대중의 미망과 광기’의 저자인 찰스 매케이는 로테르담에 잠시 정박했던 영국인 선원이 어떤 집 마당에서 양파인 줄 알고 튤립 구근을 뽑아 먹었다가 혼줄이 난 이야기를 들려준다. 뭘 몰라도 한참 몰랐던 그 선원은 결국 주인에게 붙잡혀 채무자를 수용하는 감옥에서 10년을 보내야 했다. 1635년쯤에는 부글부글 끓어오른 이상열기가 프랑스와 잉글랜드에까지 넘쳐 흘렀지만, 실질적인 거래나 광란에 가까운 투기행위는 여전히 네덜란드를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1636년이 되자 냉정을 잃지않은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이 임박한 재앙을 경고하면서 한쪽으로 쏠려 쓰러지기 직전인 나라를 바로 세우려고 노력했다. 레이덴 대학에서 식물학을 가르쳤던 에바르드 포르스티우스 교수는 튤립만 보면 심사가 뒤틀린 나머지 지팡이로 냅다 내리치곤 했다. 결국 그는 튤립에 대한 욕설과 난폭한 행동으로 형사상 정신이상자 판정을 받고 지하감옥에 갇혔다. 그밖에도 다가올 결과에 대해 주의를 환기시킨 사람들이 많았지만, 그들에게 돌아간 것은 비웃음과 조롱뿐이었다.
튤립거래가 워낙 활발하기도 했지만 날이 갈수록 복잡하고 어려워졌기 때문에 어느 새 공증인과 서기, 그리고 전문거래인이라는 완전한 하부구조가 갖추어졌다. 네덜란드 전역의 수많은 지역에 튤립거래소가 설치되었다. 정상적인 매매나 제조는 등한시되었고, 튤립을 제외하고는 네덜란드의 수출도 감소했다. 하지만 가격만 높게 유지된다면 문제될 게 없었고, 네덜란드 사람들로서는 일찍기 이런 풍요를 누려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1635년부터 1636년까지 아무리 소용돌이치듯 가격이 솟구쳐 올랐어도 거짓된 풍요가 영원히 지속될 수는 없었다. 1637년 초, 가격의 붕괴는 느닷없이 시작되었다. 처음에는 몇몇 사람만이 다른 형태의 자산으로 전환하기 위해 튤립을 팔렸고 했다. 그러나 사겠다는 사람이 없었다. 가격은 25% 떨어졌고 시장에는 더 많은 매도 주문이 들어왔다. 거래소에서는 투자자들의 신뢰를 얻기위해 가짜 경매를 꾸미고, 전보다 더 큰 상금을 걸어 가격을 회복하려고 안간힘을 썼다. 그러나 모두 헛수고였다. 팔려는 사람들이 공황 상태에 빠지자 가격은 땅이라도 꺼진 듯이 갑자기 주저앉았다. 셈페르 아우구스투스, 제너럴 볼 그리고 애드미럴 반 호른 같은 상등품 구근의 값이 몇 주 사이에 6000플로린에서 400~500플로린으로 떨어졌다. 그제야 사람들은 자신이 갖고 있는게 진정한 자산이 아니라 구근에 불과하다는 걸 깨달았다. 매케이는 당시의 상황을 이렇게 묘사했다.
“불과 몇 달전만 해도 가난이라는 게 진짜로 존재하는지 의심했던 수백 명의 사람들은 불현듯 구근 몇 개만 움켜쥐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나마 아무도 사려하지 않는 구근 뿌리. 자신들이 구입한 가격의 반에 반을 불러도 누구 하나 관심을 갖지 않았다. 비탄에 젖은 울음소리가 사방에서 들려왔고, 하나같이 제 이웃을 탓하고 나섰다. 용케 돈을 불린 몇 안되는 사람들은 행여라도 누가 알까 재산을 숨겼고, 잉글랜드나 다른 곳에 투자했다. 짧은 한 철 동안 생의 초라함을 벗고 화려함을 맛봤던 많은 사람들이 원래 살았던 보잘것없는 삶 속으로 다시 내동댕이 쳐졌다. 대규모로 거래하던 상인들은 거의 빈털터리가 되었으며, 귀족들은 가문의 재산이 회복하기 힘든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을 지켜봐야만 했다.”
너무나 많은 소장이 접수된 탓에 도저히 다 처리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고, 1637년 4월 마침내 네덜란드 대법원이 개입해서 사회의 안정과 질서를 회복하려 했다. 하지만 법원의 복잡한 판결은 아무 소용이 없었고, 재산과 통화의 급격한 위축이 낳은 불황은 몇 년이나 계속되었다.
Barton Biggs – 모건스탠리 세계전략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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